독일-아프리카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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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
2.2. 21세기
2.2.1. 2000년대
2.2.2. 2010년대
2.2.3. 2020년대
3. 문화 교류
3.1. 스포츠
4. 여담
5. 지역별 관계
5.1. 서아프리카
5.1.1. [[베냉|
파일:베냉 국기.svg
베냉
]][[틀:국기|
]][[틀:국기|
]]
베냉과의 관계
5.1.2. [[나이지리아|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나이지리아
]][[틀:국기|
]][[틀:국기|
]]
나이지리아와의 관계
5.1.3. [[말리|
파일:말리 국기.svg
말리
]][[틀:국기|
]][[틀:국기|
]]
말리와의 관계
5.1.4. [[가나|
파일:가나 국기.svg
가나
]][[틀:국기|
]][[틀:국기|
]]
가나와의 관계
5.2. 동아프리카
5.2.1. [[탄자니아|
파일:탄자니아 국기.svg
탄자니아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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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자니아와의 관계
5.2.2. [[에리트레아|
파일:에리트레아 국기.svg
에리트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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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국기|
]]
에리트레아와의 관계
5.2.3. [[에티오피아|
파일:에티오피아 국기.svg
에티오피아
]][[틀:국기|
]][[틀:국기|
]]
에티오피아와의 관계
5.3. 중앙아프리카
5.3.1. [[차드|
파일:차드 국기.svg
차드
]][[틀:국기|
]][[틀:국기|
]]
차드와의 관계
5.4. 남아프리카
5.4.1. [[나미비아|
파일:나미비아 국기.svg
나미비아
]][[틀:국기|
]][[틀:국기|
]]
나미비아와의 관계
5.5. 북아프리카
5.5.1. [[이집트|
파일:이집트 국기.svg
이집트
]][[틀:국기|
]][[틀:국기|
]]
이집트와의 관계
5.5.2. [[수단 공화국|
파일:수단 공화국 국기.svg
수단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수단 공화국과의 관계
5.5.3. [[알제리|
파일:알제리 국기.svg
알제리
]][[틀:국기|
]][[틀:국기|
]]
알제리와의 관계
5.5.4. [[모로코|
파일:모로코 국기.svg
모로코
]][[틀:국기|
]][[틀:국기|
]]
모로코와의 관계
6. 문서가 작성된 지역별 관계
7. 관련 기사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독일아프리카 국가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21세기 이전[편집]


독일은 19세기에 나미비아, 탄자니아 등을 식민지배한 적이 있었다. 식민지배할 당시에 나미비아는 남서아프리카라는 독일령 지역으로 헤레로족나마족들이 독일의 지배에 항거해서 저항했지만, 독일에 의해 학살당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뒤에 남서아프리카 등 아프리카의 독일령 지역들이 각각 영국령, 벨기에령, 프랑스령으로 나뉘어졌다.


2.2. 21세기[편집]



2.2.1. 2000년대[편집]


2001년 9월 3일, 독일이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경영하고 노예제도를 운영한 것을 잘못했다고 밝혔다.#

2008년 7월 5일, 메르켈 총리는 짐바브웨 제재에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지를 촉구했다.#


2.2.2. 2010년대[편집]


2013년 9월 22일, 독일 하원 선거에서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 첫 하원의원이 선출됐다.#

2014년 5월 11일, 독일 정부는 아프리카 문제에 기여하기 위한 새로운 아프리카 구상을 발표했다.#

9월 22일, 독일 정부가 서아프리카 에볼라 감염지역으로부터 의료 구호를 위한 지원 병력을 받는다고 밝혔다.#1#2

11월 29일, 황금왕관을 도둑맞은 아프리카의 한 부족 군주가 독일에서 화상전화로 통치를 한 사실이 화제가 됐다.#

2015년 1월 15일, 드레스덴시에서 에리트레아 출신 난민 청년 1명이 살해됐다.#

4월 7일, 독일 정부는 아프리카에 장관 2명을 보내 에볼라 예방과 대응 체계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2010년대 중반부터 유럽 난민 사태가 일어나 독일로 수많은 아프리카, 서아시아 출신 난민들이 이주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와 난민들 간에 갈등이 생겨나기도 했다.

2016년 10월 9일, 메르켈 총리는 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하기로 했다.#

2018년 1월 24일, 메르켈 총리는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 국가들을 식민지배하면서 많은 잘못을 저지른 점에 대해 사죄했다.#

3월 27일, 독일 폭스바겐사가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확대했다.#

8월 29일 ~ 31일, 메르켈 총리는 경제 개혁 및 사회 기반시설 개선 지원, 독일에서 아프리카 학생들의 교육 기회 확대를 실시하기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을 방문했다.#

2019년 8월 4일, 몰타 정부가 아프리카 난민 40명을 태운 독일 구조선의 입항을 허가했다.#


2.2.3. 2020년대[편집]


2020년 8월 3일, 독일에서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3명이 극우 세력들에게 살해당했다.#

2021년 6월 6일, 독일과 프랑스가 아프리카의 식민 지배에 대해 사과했지만, 정작 형식적인 책임 인정에 그치다는 비판이 나왔다.#

2022년 5월 22일, 숄츠 총리가 식량, 에너지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기 위해 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하기로 했다.#

5월 24일, 숄츠 총리는 독일을 비롯해 식민지 과거가 있는 국가들은 역사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7월 1일, 독일 측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약탈했던 문화재 1,000점을 반환한다고 밝혔다.#

7월 14일, 아프리카 난민 출신 여성이 독일 주정부의 첫장관으로 임명됐다.#

11월 15일, 안토니오 뤼디거 선수가 월드컵 보너스를 아프리카 국가들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12월 7일,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장관이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2023년 1월 13일, 프랑스와 독일의 외무장관들이 아프리카 국가들을 향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수소분야에서 독일은 나미비아와 남아공을 선정했다.#


3. 문화 교류[편집]


독일어는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주요 외국어로 지정돼 있다. 그리고 독일인 관광객들이 아프리카로 자주 여행하러 오는 경우가 존재한다. 독일의 지배와 영향으로 나미비아는 독일어가 주요 외국어이고 독일 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2013년 1월 18일, 독일 베를린시에서 아프리카 패션의 날 행사가 개최됐다.#


3.1. 스포츠[편집]


독일 흑인들중에는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각 나라들의 축구팀 감독들중에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 출신들이 많이 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축구팀을 이끄는 감독들이 자국 출신 감독들로 이루어졌다.#


4. 여담[편집]


독일 흑인 출신의 한 이민자가 독일에서 정비공으로 활동하면서 부족의 왕이었던 사실이 알려졌다.#


5. 지역별 관계[편집]



5.1. 서아프리카[편집]



5.1.1. [[베냉|
파일:베냉 국기.svg
베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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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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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냉과의 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베냉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베냉은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에 수교했다. 일부 교류가 존재하지만, 베냉측이 약탈된 유물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5.1.2. [[나이지리아|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나이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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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와의 관계[편집]


나이지리아와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에 수교했다. 양국은 일부 교류와 협력이 존재한다. 그리고 독일 흑인들중에는 나이지리아 출신도 포함돼 있다.

2015년 1월 1일, 나이지리아에서 독일인 5명이 사망했다.#

2021년 5월 2일, 독일이 베닌 제국으로부터 약탈한 문화재를 돌려준다고 밝혔다.#

2022년 7월 1일, 독일 측이 나이지리아로부터 문화재 1,000점을 반환한다고 밝혔다.#


5.1.3. [[말리|
파일:말리 국기.svg
말리
]][[틀:국기|
]][[틀:국기|
]]
말리와의 관계[편집]


말리는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 독일과 수교했다. 말리인들중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독일로 건너가는 경우가 존재한다.

2013년 1월 16일, 독일 정부는 말리 파병을 위한 수송기 2대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2022년 11월 22일, 독일 정부는 말리에서 평화유지군 철수를 하기로 말리 정부와 합의했다.#


5.1.4. [[가나|
파일:가나 국기.svg
가나
]][[틀:국기|
]][[틀:국기|
]]
가나와의 관계[편집]


가나는 독일과의 교류, 협력이 활발한 편이다. 가나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에 독일과의 교류가 늘어나고 있다. 독일 흑인들중에는 가나로 이주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독일 축구선수들중에는 가나 출신도 일부 포함돼 있다.

2014년 6월 22일, 브라질 월드컵에서 가나 축구팀과 독일 축구팀과의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다.#

2020년 6월 15일, 폭스바겐사는 가나에서 차량 생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5.2. 동아프리카[편집]



5.2.1. [[탄자니아|
파일:탄자니아 국기.svg
탄자니아
]][[틀:국기|
]][[틀:국기|
]]
탄자니아와의 관계[편집]



독일은 19세기에 탄자니아를 식민지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당시의 탄자니아는 르완다, 부룬디와 함께 독일령 동아프리카란 이름으로 식민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식민지배당시에 탄자니아내의 일부 부족들이 봉기를 일으켜 독일 식민 지배에 항거했지만, 같은 대륙의 독일령 식민지였던 나미비아헤레로족과 나마족 학살처럼 독일군이 봉기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식민지내 아프리카 흑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거기에다 독일은 탄자니아를 식민 지배 당시 나미비아, 카메룬, 토고, 르완다에서 현지 주민들의 두개골을 연구에 쓴다는 이유로 독일로 가져가는 만행까지 저지른 적이 있다.# 또한 독일이 2차대전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것과는 다르게 과거 독일 식민제국의 피해국들에게는 나몰라라하는 태도를 보였기에 좋을 수가 없다. 단 베를린에 복원되는 프로이센 왕궁에 독일 식민 제국에 의한 피해를 조명하는 공간을 만들고 아예 이러한 학살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타 유럽 국가보다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리고 탄자니아는 독일에 대해서는 나미비아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안 좋은 감정이 있고 독일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한다. 다만 문화적인 면에서 탄자니아는 독일의 영향을 받아서 맥주가 많이 생산된다. 그리고 스와힐리어에도 일부 독일어 차용어가 존재한다.


5.2.2. 에리트레아와의 관계[편집]


에리트레아는 독일과 수교했다. 하지만 에리트레아가 인권을 탄압하고 난민들이 많이 발생되고 있어서 양국간에 정치적으로 갈등이 존재한다.

2015년 1월 15일, 독일 드레스덴시에서 에리트레아 출신 청년 난민이 살해됐다.#

8월 4일, 독일 정치인이 에리트레아 출신 난민 2명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면서 일자리를 찾도록 돕고 있는 것이 화제가 됐다.#


5.2.3. 에티오피아와의 관계[편집]


에티오피아는 독일과의 교류가 많은 편이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인들중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독일로 건너가는 경우가 존재한다. 독일어는 에티오피아에서 주요 외국어로 지정돼 있다. 독일의 폭스바겐사가 에티오피아에 공장을 세웠다.

2016년 10월 11일, 메르켈 총리가 에티오피아를 방문했다.#


5.3. 중앙아프리카[편집]



5.3.1. 차드와의 관계[편집]


차드는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에 독일과 수교했다. 독일 기업들이 차드에 우라늄 관련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있지만, 양국은 정치적으로 갈등이 존재한다.

2023년 4월 8일, 차드 정부는 주차드 독일 대사가 무례한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추방한다고 밝혔다.#


5.4. 남아프리카[편집]



5.4.1. 나미비아와의 관계[편집]



나미비아는 독일과 역사적인 이유로 갈등을 겪고 있다. 독일(당시 독일 제국)이 19세기에 나미비아를 식민 지배한 적이 있는데 이 당시의 나미비아는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란 이름으로 통치를 받았다. 당시 헤레로족들이 독일의 지배에 항거하자 독일은 헤레로족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다. 나미비아 측은 지금도 독일의 학살 행위를 교육과정에서 가르치고 있고 독일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한다. 2010년대 후반에 독일 정부는 헤레로족 학살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보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독일은 나미비아를 식민 지배했을 당시 피해자들의 두개골을 연구에 사용하겠다는 명목으로 가져가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2018년 8월 29일에 두개골을 나미비아로 되돌려주는 3번째 행사가 열렸다. 기사 또한 2019년 5월 17일에 독일 정부는 120여 년 전에 약탈한 유물을 나미비아에 반환했다.#

2022년 12월 23일, 나미비아는 식민 잔재의 청산으로 독일제국 장교상을 철거했다.#

악감정과는 반대로 독일의 영향이 널리 퍼져 있다. 나미비아에선 독일어가 사용되고 독일의 영향으로 루터교회가 널리 퍼져 있으며[1] 소시지, 슈바인스학세, 자우어크라우트독일 요리를 즐겨먹는 사람이 많다. 독일 치하에서 독일의 맥주 양조 기술이 들어온 영향으로 나미비아 맥주 또한 아프리카 국가의 맥주들중 상당히 맛이 좋기로 매우 유명하며 빈트후크(Windhoek)[2]와 타펠(Tafel)이 대표적이다.

맥주의 나라인 만큼 나미비아를 비롯해 과거 독일이 식민 지배했던 국가나 지역들의 맥주는 매우 우수하다.[3]


5.5. 북아프리카[편집]



5.5.1. 이집트와의 관계[편집]



이집트과는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이다. 하지만 엘시시의 집권 이후, 인권 문제로 인해 양국의 관계가 다소 불편해진 적이 있다. 2017년 8월 27일에 양국 정부는 이민자 추방을 원활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 협약을 맺었고 독일은 이집트인을 대상으로 직업훈련투자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5.5.2. 수단 공화국과의 관계[편집]


2019년 9월 3일,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이 수단 과도정부를 돕는다고 밝혔다.#

2020년 4월 13일, 독일 정부는 수단 과도정부와 경제협력을 재개하기로 했다.#

2023년 4월, 수단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자 독일은 외교관과 가족들이 대피했다고 밝혔다.#


5.5.3. 알제리와의 관계[편집]


알제리는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에 독일과 수교했다. 양국은 교류, 협력이 활발한 편이다. 그리고 알제리인들중에는 독일로 이주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독일어는 알제리에서 주요 외국어에 속해 있다.

다만 이와 별개로 1982년 서독과 오스트리아의 축구경기에서 승부조작으로 알제리 축구팬들이 독일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2018년 9월 14일, 알제리 정부는 메르켈 총리가 17일에 알제리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5.5.4. 모로코와의 관계[편집]


모로코와는 교류, 협력이 활발한 편이다. 양국은 교류도 많고 모로코로 관광하러 오는 독일인들이 많은 편이다. 독일어는 모로코에서 주요 외국어로 지정돼 있다. 모로코인들중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독일로 건너가는 경우가 존재한다.

모로코 출신 축구선수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2015년 1월 22일, 독일과 모로코 외무장관들이 난민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6. 문서가 작성된 지역별 관계[편집]




7. 관련 기사[편집]




8. 관련 문서[편집]



[1] 나미비아에 루터교회가 처음 전파된 건 핀란드 출신 선교사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독일의 지배를 거치면서 루터교회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졌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다만 핀란드의 루터교회는 스웨덴의 영향으로 가톨릭이나 성공회와 비슷한 성직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쉽게 말하자면 신부, 대주교, 수사, 수녀 등이 존재함), 오늘날 나미비아의 루터교회는 독일이나 동구권의 루터교회처럼 성직제도가 없고 일반적인 개신교처럼 목사가 교회를 이끌기 때문에, 독일의 영향으로 루터교회가 퍼졌다는 말도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현재 나미비아의 루터교회는 성직제도인 북유럽식 루터교회와 목사가 이끄는 독일·동구권식 루터교회로 나뉘어진다.[2] 나미비아의 수도 이름이기도 하다.[3] 대표적으로 칭다오가 있다. 단, 물, 보리, 홉 외에도 쌀을 첨가하는 중국 칭다오 맥주와 달리 나미비아 맥주인 빈트후크나 타펠은 독일의 맥주 순수령 비슷하게 물과 보리, 홉으로만 맥주를 양조한다.